악몽1
유우카의 악몽에 관한 이야기
코믹스 스토리상의 일이 전부 끝난 후, 고등학교 2학년의 가을을 배경으로
모든 일이 끝나고 행복해야만 할 것 같지만 트라우마라는 게 쉽게 잊히는 건 아니니까..
...
솟아오르는 열기에 도저히 제대로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시야를 온통 붉게 채우는 불길과 피.
그리고, 아아.. 그 속에서 손을 뻗어오는 건 ― .
두렵고도 증오스러운 모습의 네가 … ….
가을을 맞아 날씨는 선선하고 화창했다. 높게 뜬 구름이 창 밖을 지나가고, 시선을 돌리면 이따금씩 잠자리가 보이곤 했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높이 내리쬐는 태양빛은 유우카의 발 끝에 겨우 닿았을 뿐이다. 창가에서 두 번째로 떨어진 줄 맨 뒷자리에 앉던 유우카에게 온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건만 유우카는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날 잠을 설친 덕분인지 아침부터 내내 머리가 멍했다. 그저 시선을 닿는 곳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야, 야."
"..."
"어이, 유우카!"
".. 어? 나, 나? 불렀어?"
문득 옆자리에 있던 죠노우치가 유우카를 불러 깨웠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우카는 당황한 듯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고, 죠노우치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벌써 수업이 끝난 모양이다. 유우카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도 듣지 못하고 멍 때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뭘 그렇게 째려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째려보고 있었다고?"
"모르는 척 하기는. 사람이라도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잖아."
"아..."
내가 그런 표정을 지었던가? 유우카가 멍청한 낯을 하곤 되물었다. 어쩐지 정말로 모르는 듯한 태도에 죠노우치는 의아해하며 유우카의 옆에 서서 유우카가 바라보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면에 보이는 건 오른쪽 대각선 앞자리, 유우기의 자리였다. 어쩐지 미심쩍은 기분이 되어있던 죠노우치의 옆으로 안즈와 혼다, 그리고 함께 있던 유우기가 다가오자 상념은 금방 흝어졌다.
"죠노우치, 유우카랑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글쎄 이 녀석이 종 친 것도 모르고 멍 때리고 있잖아."
"아우.. 됐거든. 그냥 잠을 좀 설쳐서 그래."
"잠을? 유우카, 괜찮은 거야?"
"아, 응. 지금 점심시간이지? 밖에서 조금 걷다가 오면 잠은 깰 것 같아. 그런데 바쿠라는? 안 보이네?"
"아까 선생님이 부르셔서 심부름하러 교무실에.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점심은 먼저 먹으라던데."
가까이 다가온 유우기가 죠노우치를 부르고, 화제는 이어서 유우카에게로 넘어왔다. 안즈까지 가세하자 어쩐지 걱정받는 기분이 되어 유우카는 얼른 괜찮은 체를 했다. 그다지 관심이 집중되는 건 바라지 않았다. 정말로 잠을 설친 것뿐이기도 하고. 바쿠라가 없다는 말에 아쉬운 표정이 잠시 스쳤던 유우카는 선생님 심부름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러고보면 너희는 늘 같이 다녔지. 하고 이어지는 혼다의 말에 그저 멋쩍게 웃었을 뿐이다.
도시락을 챙기고 모여 앉으며 유우카는 아까 죠노우치가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고? 내가? 자신이 유우기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었다. 어쩐지 오늘 하루 종일 그에게로 시선이 향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오늘 꾼 꿈 때문일까.
모든 일이 끝나고, 파라오도 명계로 돌아가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유우카와 바쿠라는 특히 어둠의 바쿠라에게 시달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어코 마지막 시련이었던 아템의 기억 속에서마저도 유우기와 친구들을 방해했던 유우카였는데도, 그들은 꽤 쉽게 유우카를 용서해주었다. 물론 죠노우치가 끝까지 씩씩대긴 했으나, 별 수 있겠는가.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고 지배당하는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기에 화는 쉽게 풀렸다. 그럴 수밖에, 그 자신도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파라오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기억이 왜곡되어 꿈속에서 펼쳐졌다. 삼천 년 전의 자신은, 쿨 에르나에 있었다. 쿨 에르나에서 죽었다. 산 채로 불에 타는 사람들과 찢겨나가는 신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렇게 죽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를 어린 나이에, 멀어져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흘깃거리다가. 어떻게 그때의 기억이 전해져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느낀 답답함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으니까. 그래서 유우카는 그 기억을 잊기 위해 한동안은 듀얼이나 노는 일에 집중하기 바빴다. 최소한 자신이 기억에 무뎌질 때까지는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잊어버리려 노력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라는 듯이, 잊으려고 할수록 더욱 강하게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악몽이 되어 찾아왔다.
덕분에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다시 잠에 들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다. 아마 유우기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도 파라오와 닮은 모습 때문이리라. 유우카는 그의 기억 속에 있을 때에도 종종 그랬던 것을 떠올렸다.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은 느낌, 어쩐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한 느낌. 덕분에 그 파라오의 앞에서도 너도 겪어봐야 한다느니, 영문 모를 말들을 뱉었더리라.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미 꿔 버린 꿈을 어쩌겠는가? 곧 중간고사가 다가와서 예민해진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유우카는 머리를 흔들어 의식을 깨웠다. 이미 책상을 맞춰 모은 친구들이 유우카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저도 얼른 책상을 맞춰 앉았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내일이면 괜찮을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시콜콜한 수다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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