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psycho.
1. 금요일, 17시.
...
깜빡, 불쾌한 감각에 눈을 뜹니다.
빛 하나 없는 어둡고도 어두운 공간입니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얼굴에 스치는 서늘하고도 무거운 공기가 느껴집니다.
순간 몰려드는 깨질 듯한 두통에 몸을 움직이려 해보자, 어느샌가 등 뒤로 묶인 손에서, 밧줄에서 쓰린 자극이 옵니다.
묶은 채로 누군가 이곳에 당신을 가둔 건가요?
아무것도 기억나는게 없습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죠?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역시 짚이는게 없습니다.
누가? 왜? 스스로 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어둠 속에서 이름이 불립니다.
당신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당신이 아는 한, 한 사람 뿐입니다.
낯익고도, 반갑지 않은 목소리에 으스러지듯 아파오는 머리를 간신히 들어보자니, …
아.
역시 하야토입니다.
그 또한 이 어둡고 꽉막힌 공간이 달갑지 않은 것인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도 같습니다.
그가 당신을 이 곳에 가둔 걸까요?
무어라 말을 해보려 하자 목소리는 갈라져 거칠기만 합니다.
아, 숨이 막혀옵니다.
하야토는 그런 당신을 보며 슬 웃습니다.
당신을 내려다보는 그 두 눈에는 무엇이 담겨 있던가요?





널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니까. (살의입니다.)
찬 공기를 가르며 그 말만이 울려퍼집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고 고개를 들어 하야토를 살피면,
그의 눈빛이 어딘가 스산합니다.
늘 나른한 눈빛이던 하야토의 눈과는 다릅니다.
그는, 진심으로 당신을 죽일 셈입니다.
세이조, 이성 체크.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 적막 속 낮은 웃음소리에서, 하야토가 나지막이 말합니다.

(곧 당신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뒤를 돌고는,)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문을 열고 방이 울리도록 닫고 나갑니다.)
계단을 올라가는 그 발소리가 이 곳에 울려퍼집니다.

...
주변을 살펴보면 벽과 바닥에 검붉은, 이미 말라버린 핏자국이 당신이 앉은 의자까지 나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피를 흘렸던가요?
그러기엔 옷이 깔끔합니다만……
아, 이 옷… 제 것이 아닙니다.
하야토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손목이 욱신거립니다. 우선 이 밧줄부터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놀림이나 근력, 기타 탈출하려는 시도의 판정이 가능합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수차례 힘을 주어 풀어내려 하자 밧줄이 끊어지고는, 남은 부분을 마저 손으로 뜯어냅니다.
무뎌진 밧줄을 그대로 떨어뜨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자,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걷는것조차 힘이 듭니다.
몸이 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간신히 몸을 이끌고 문가로 다가갑니다.
문고리를 당기자 문은 쉽게만 열립니다. 마치 막지 않겠다는 것처럼.

위로는 끝없는 계단입니다. 조명 하나 없어 앞을 볼 수 조차 없이 어둡습니다.
허나 이 곳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 외엔 들지 않습니다.
아니, 나가야만 합니다.
이 곳에 누가 있는지 안 이상, 저를 누가 가둔지 안 이상.
2. 금요일, 19시.
조심스레 발걸음을 이끌고 올라온 곳엔 작은 문이 보입니다.
빛이 새어나오는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집의 내부입니다.
하야토의 집과는 다른 곳입니다. 여긴 어디일까요?
어디여도 이상하지 않죠. 그는 재벌이니까요. 가진 집도 많을 것입니다.
둘러보니 하야토는 없습니다.
그새 어딜 가기라도 한 걸까요?
둘러보자 시계가 눈에 띕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며칠 몇시죠?
마지막으로 본 날짜는 일요일 ,11월 1일이었는데 말이죠.
시계에 표시된 날짜와 시간은 11월 6일 금요일, 19시 24분입니다.

...
문득 커다란 문이 보입니다.
분명 현관문입니다.
너무나도 찾기 쉬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만…
문고리에 손에 대고 돌려보자, 역시나 너무나도 쉽게 문이 열립니다.
왜죠?
이렇게 쉽게 문이 열리는 것도 이상합니다만… 뭐, 기회라 생각하죠.

문을 열어보면 ... ...
잠깐, 이게 뭐죠?
바깥은 온통 검습니다.
아니, 그보다 앞에 이건…
검은색의, 문의 크기를 훨씬 넘는 점액질의 액체와도 같아 번들거리는 생물이 당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쳐다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요?
겉에 빼곡히 박힌 것은 전부 눈인가요?
깜빡, 수천개의 희고 검은 것이 깜빡입니다.
세이조, 이성 체크.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3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성이 2 깎입니다.
이젠 어떡하죠? 더 물러날 곳이…
... ...
... 탕,
허공을 가르는 총성음이 들려옵니다.
분명 이 쪽을 향한… 하야토인가요?
순간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스쳐 가는 것만 같습니다.
분명 당신을 죽여버리겠다는…….

... 당신은 멀쩡합니다.
앞에 있던, 방금 보았던 괴물만이 검은 액체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충격으로 얼굴과 옷에도 몇 방울이 검게 번져 버렸습니다.
구해준 건가요, 하야토?
무얼 물어볼 틈도 없이 하야토는 당신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는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다가와서는 방금 쏜 탄환의 온도가 채 식지도 않은 총구를 당신의 머리에 겨눕니다.
그 손 끝은 분노로 인해 떨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게 읊조리고는 어딘가로 향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하야토는 당신을 죽이려던게 아니었나요.
그 두 눈에서 본 감정에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닿았던 그 감각이 선연합니다. 정말 당신을 죽일 셈입니다.
……그럼에도 살려두고 있는건 왜죠?
나갈 수도 없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주위를 둘러보니 [책장], [소파]가 보입니다.

[책장]
하나같이 두꺼워 보이는 서적 여러권이 꽂혀있습니다.
한 권만이 방금 봤다 도로 꽂아넣은건지 배열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책을 펼쳐 읽어보자면 온통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페이지가 가득합니다.
이런 책은 왜 있는 걸까요?
페이지를 조금 넘기자, 작은 은색 열쇠가 하나 떨어집니다.

평범한 열쇠입니다. 챙겨둘까요?

(근처에 보이는 소파로 가 망설임 없이 앉는다.) 삭신이 다 아프네.
새 것 같은 깔끔한 소파입니다.
세월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푹신하기까지 하네요.
옆을 보면 하야토의 휴대폰이 있습니다.
잠금이 걸려 풀어볼 순 없지만...
세이조, 관찰 판정.

| 기준치: | 45/22/9 |
| 굴림: | 2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휴대폰에 적힌 시간과 날짜는 11월 8일, 일요일 오전 0시입니다.
아까 시계에서는 11월 6일, 금요일이었지 않나요?
상단에 통화 불가 지역이라고 쓰여 있네요.
이 곳은 어디인가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다니…

"카미"
그러고 있지만,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봅니다.
어쩐지 조금은, 아니… 많이 누그러진 느낌입니다.





하긴, 지난 시간에 따르면 세이조는 5일간 먹은 게 없는 셈이 됩니다.
그렇게나 가두면서 식사 한번 차리지 않는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죠.
부엌 테이블에는 스프 그릇과 스푼이 놓여 있습니다.
형식 상의 나이프와 포크는 있을 리가 없습니다.
사용할 음식도 없고요.
스푼을 들어 조금 떠먹자니 ...



(그렇게 말하는 하야토의 표정은 어딘가 즐거워 보입니다. 아까의 그 살기는 어디로 갔나요?)



중얼거리며 하야토에게 흘깃 눈길을 주자면.
하야토의 왼쪽 팔 옷소매가 온통 붉게 젖어 있습니다.
어째서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걸까요?
요리를 하던 중 다친 건가요?
아니, 그러기엔 칼을 사용할 요리조차 없는데…
시선을 돌려 부엌의 조리대를 봅니다.
냄비, 주전자, 각종 기구… 그리고 식칼.
칼에 검붉은 액체가 가득 묻어있습니다.
조리대 위, 바닥, 그리고…
스프 그릇에 붉은, 미세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불안감에 스프를 휘저어 보자니 스프가 붉어지고는, 그릇의 바닥에서 덩어리진 검붉은 액체가 떠오릅니다.
세이조, 이성 체크.

| 기준치: | 58/29/11 |
| 굴림: | 73 |
| 판정결과: | 실패 |
이 미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낸다.)
이성이 1 깎입니다.
이건 하야토의 피인가요?
하야토는 웃으며 당신을 쳐다봅니다.
붉은 소매 안에서 벌어진, 살갗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선혈이 역겹기만 합니다.








세이조는 이제 됐다며 자리를 빠져나옵니다.
그러던 중 ...
세이조, 듣기 판정.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거실에서 미세한 진동 소리가 들려옵니다.
전화 수신음 같아요.
하야토의 휴대폰이 거기 있었죠.
눈에 띄지 않게 거실로 가 하야토의 휴대폰을 확인하자면, 전화가 와있습니다.
분명 통화 불가 지역이었지 않나요?
…잠깐, 화면에 뜬 이 번호……
세이조, 당신의 번호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 …
전화를 받아보면 소름끼치는, 낮은 한 톤의 기계음만이 이어집니다.
전화가 끊어졌을 때 나는 소리요.
다시 화면을 확인해 보자 여전히 통화중이라는 표시가 이어집니다.
지금 전화를 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요?
곧 전화가 끊어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옵니다.
대기 화면에 뜨는 문자 역시 발신번호는 당신의 번호입니다.
내용을 확인하자면…
[전화 안받아서 문자로 보내. 내일 23시, 내 집으로 와 줘. 할 말이 있으니까.]

다시 문자를 확인해 보자니 수신일은 11월 6일 금요일 21시 48분입니다.
분명 '새 메세지' 이지 않았나요?
휴대폰에 뜬 날짜는 분명 11월 8일, 0시입니다.
왜 하야토는 날짜를 이렇게 설정해둔건가요?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지금 문자를 보내는 건 누구인가요?
왜 하야토에게 집으로 오라고…



(빼앗은 휴대폰의 화면을 보더니, 잠시 당황한다.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너는 그래야지.
나한테..
내 손에 죽을 때까지.
아, 숨이 막혀옵니다.
저항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시야가 흐려집니다.
더 이상은……
4. 토요일, ??시.
… 꿈 속인가요?
감각이 붕 뜨는 것만 같습니다.
너무나도 낯익은 공간입니다.
너무나도 낯익은…… 당신의 집입니다.
당신은 단지 서 있습니다.
열린 문 앞에 하야토가 있습니다.
그가 왜 이 곳에 있나요?
잠깐, 하야토… 칼을 들고 있습니다.
칼을 들고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역시 꿈 속에서도 그는 당신을 싫어하는군요.
아니, 그보다 하야토… 왜 그런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나요?
그 표정은 뭔가요?
분명 꿈임에도 무언가를 들어 손을 움직이는 감각이 선명합니다.
서늘한, 차가운 감각.
순식간에 시야는 다시 암전됩니다.
무슨 소리, 하야토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지금 당신, 뭘 하고 있나요?
5. 토요일, 3시
……밀려오는 고통에 눈을 뜹니다.
어떻게 된거죠?
다시, 어둡고도 서늘한 공간입니다.
바닥엔 피가 가득합니다.
아니… 피로 웅덩이가 져 있습니다.
이건 누구의 것인가요? 처음 눈 뜬 공간과는 다른,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그대로 피부에 닿습니다.
분명 하야토가…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 몸 같지가 않습니다. 몸이 너무나도 뜨겁습니다.
정적만이 흐릅니다.
얼어붙은 정적 사이로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막혀오는 숨 사이 괴로운 신음이 터져나옵니다.
오한이 들고는 손이 벌벌 떨려옵니다.
곧 누군가 제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보입니다.
부드럽고도, 차가운 손길입니다. 그 손길이 그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던가요?
그 온도가 너무나도 편안해서. 어쩐지 조금, 조금만 더 의지하고 싶어지는 온도입니다.
얼어붙도록 따뜻한 그 온도를 감싸며, 그 끝으로 시선을 돌려보자니, 그 손 끝에 있는 것은……

하야토.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싱긋 웃어보입니다.
그의 뒤로 사방으로 튄 투명한 액체, 유리조각, 그리고… 깨진 주사기가 보입니다.

작게 깨진 유리의 파편을 보자, 떨려오는 손 사이로 단 하나의 생각밖에 들지가 않습니다.
약을 썼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가만히 하야토를 봅니다.
하야토는 나직이 속삭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하야토는 소름돋도록 웃고 있었습니다.
가빠져오는 숨 사이로 하야토는 그 차가운 손으로 탐사자의 손목을 잡고는, 가볍게 입맞춰 보입니다.
그 멍든 손목을요.
…잠깐, 손목에 붉게 상처가 나 있습니다.
아니, 이건 상처라기엔… 명백한 상흔입니다.
칼로 깊게 그은 듯한…… 얼마나 깊게 찌른 건가요.
살이 잔뜩이나 벌어져 있습니다.
세이조, 이성 체크.

| 기준치: | 57/28/11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이 1 깎입니다.
여전히 깊게 패인 상처에서는 선명한 혈액이 뚝, 뚝 떨어져 내립니다.
바닥의 피의 근원은 이것이었나요.
죽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의 깊이입니다만… 왜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죠?
그의 옷에 튄 핏자국이 너무나도 눈에 띕니다. 분명, 하야토의 짓입니다.



하야토는 일어서서는, 나가려는 듯 싶더니 다시 한번 뒤돌아서는 내려다 봅니다.
아래로 향한, 당신을 향한 시선. 찢어지는 듯한 미소, 정말 즐겁다는 듯한…
그 얼굴에 서려있던 분노는 어디가고 희열만이 남아있던가요.
비명과도 같은 마찰음을 내는 문을 열고는 나갑니다.
탁, 다시 이 곳에 당신 혼자입니다.
그다지 몸상태가 좋지 않기에, 당신은 자유로이 행동하는 데에 제약을 받습니다.

문까지 걸어가려던 찰나, 방 안이 신경쓰입니다.
방을 둘러본다면, 무언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시계], [책상], [상자], [창문]이 보입니다.

[시계]
작은 탁상시계입니다. 시계의 시침은 8시와 9시의 중간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잠깐, 이 시계 바늘…… 뒤로 가고 있나요?
거꾸로 흐르고 있습니다.
세이조, 지능 판정.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 타이머 마냥 남은 시간이라도 알려 주는 것 같아요.

[책상]
나무 책상입니다. 책상은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책상에는 작고 투명한 빈 유리병 몇 개가 내팽겨쳐진듯 있습니다.
각자 다른 내용물을 담았던 것 같네요. 빈 유리병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 약을 모두 주사한 건가요? 족히 봐도 치사량입니다만…
주변에도 몇 방울 떨어져 있네요. 그 옆에는 메모지가 구겨져 있습니다.
[세이조를 ▓▓지 않▓다면 내가 죽는▓?] [XX.XXX. XX. 8일 일요일 0시.]
하야토의 글씨체입니다. 당신의 집 주소까지 적혀 있습니다.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내용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야토가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가 죽습니다.
누가 협박이라도 한 걸까요? 그런 협박에 넘어갈 하야토가 아니긴 하지만요.
세이조, 관찰 판정.

| 기준치: | 45/22/9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실패 |
방금 썼다기에는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메모지입니다만…
글씨도 조금씩 번져 있는 것이 시간을 느끼게 해줍니다.

[상자]
잡동사니를 넣어둔 상자 같습니다. 꽤나 구겨져 있네요.
[옷], 그리고 [책]이 몇 권 들어있습니다. 한 권에 책갈피가 꽂혀 있네요.

[옷]
구겨진 채로 대충 버려진 듯이 넣어진 옷입니다.
옷을 살펴보니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되었는지 이미 될대로 검어졌지만.
이 옷, 어쩐지 익숙하지 않나요? …
…아, 이 옷. 세이조, 당신의 옷입니다.

별달리 이상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입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
거실에서 본 책과 같이 전부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있습니다.
책갈피가 있는 곳을 펼치니 메모 하나가 붙어있습니다.
[되돌렸다. 토요일까지.] 되돌렸다니, 무엇을 말인가요?
아, 밑에 작게 무어라고 쓰여있습니다.
[죽여버리겠어, 진짜로.]
글씨는 휘갈겨진 채로 쓰여 있습니다.

(책을 바닥에 거칠게 두고 창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창문]
평범한 창문이었던 듯 합니다만… 나무판자로 그 시야가 막혀 있습니다.
틈새로 옅게나마 빛이 새어들어옵니다.
작게 난 그 틈으로 간신히 바깥이 보일 듯 하네요.
당신이 바깥을 보자면…
온통 밤입니다. 달을 가리는 구름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에요.
오랜만에 보는 바깥 풍경에 어쩐지, ……
아, 깨질 듯한 두통이 순간 몰려옵니다. 두통에 눈살을 찌푸린 것도 잠시…
이게 뭔가요? 창문을 가린 판자의 틈 사이로 무언가가 스멀스멀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검은, 정체 모를것이 잔뜩 기어들어옵니다.
기어와서는, 당신 주변을 감쌉니다. 시야가 잔뜩 검어집니다.
마치 아까 보았던 그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 다시금 수백, 수천개의 눈이 당신을 향합니다.
한번씩 깜빡이는 것이 소름돋기 짝이 없습니다.
쩌억, 그것이 아가리를 벌리고는. 커다란, 사람의 팔만한 이빨이 당신을 향합니다.
이게, 이게 도대체…
이걸 과연 살아있는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문은 잠긴 채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뒷걸음질을 쳐봐도 그 뒤조차 가득 차버렸습니다.
아, 도망갈 곳조차 없습니다. 온전히 어둠에 가려집니다.
비로소 온전한 어둠에…

……이젠 어떡하죠?
………
어느 온도가 당신에게 닿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 하야토?
아직 약 기운으로 제정신이 아닌 걸까요?
그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자 서서히 어둠이, 그 괴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안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끌어안는 그 팔이, 그 손에, 그 온기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야토가 어쩌면 처음으로 고마운 순간입니다.
그 이유모를 다정함에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 채, 그에게 안긴 채 그대로 있는 그 감각이 편안합니다.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하야토는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하야토의 낮은 목소리마저, 세이조에겐 안도감으로 돌아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렴 어떤가요.
그렇게 몸을 맡긴 채 가만 듣고 있자니 어느새 그의 목소리만이 방 안에 울립니다.
그 울림마저 너무나도 편안합니다. 너무나도…
.... 푹.
등에 날카로운 감각이 스며듭니다.
순간 숨이 터질 듯 막혀 옵니다.
차가운 금속이 살과 맞닿기를 넘어 관통하는 그 감각이. 옷이 젖어 번지는 그 감각이 선명합니다.
울컥, 하고는 뜨거운 액체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듯이, 아니… 쏟아지듯 번져 내립니다.
시야가 붉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감각이, 모든 것을 내준 그에게 안긴 몸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가 웃었던가요?
누구보다 즐겁다는 듯이.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아, 시야가 흐려집니다. 모든 감각이 흐려집니다.
하야토의 온도만이 끔찍이도 따뜻하도록 당신과 닿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던가요?
6. 토요일, 22시.
…다시 눈이 뜨입니다.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를 받치는 푹신한 이불이 당신의 등 뒤를 감쌉니다.
붉게 피로 물든 침대 위입니다.
절그럭, 하고 쇠의 마찰음이 났던가요. 소리의 근원을 살펴보자니 발목에 족쇄가 차여 있습니다.
사슬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도망칠 수는 없겠군요.
하야토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픔과 함께 상체만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니, 침대 바로 옆에 서랍이 보입니다.

[서랍]
자물쇠로 잠겨있습니다. 열쇠가 필요한 걸까요?

은색 열쇠는 그대로 옷 안에 있습니다.

서랍은 작게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그 안에는 휴대폰, 종이 쪽지, 권총이 들어있습니다.

[휴대폰]
당신의 휴대폰입니다
역시 하야토가 가지고 있었군요.
화면에 표시된 현재 시간은 11월 8일, 오전 0시입니다.
…분명 전에 하야토의 휴대폰을 봤을 때도 같은 시각이었지 않나요?

여전히 통화 불가 지역입니다.

[종이 쪽지]
세번 접혀 있는 쪽지입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듯, 빳빳하지는 않네요.
펼쳐 보자면…
[내가 죽으면 하야토 역시 죽는다. 11월 2일 월요일부터 이 말만 며칠째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 그가 죽는다면,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첫줄에 쓰인 문장입니다. 내가, 라니요?
……아, 이건 세이조, 당신의 필체입니다.
문장을 본 순간 다시금 두통이 밀려옵니다.
“세이조, 네가 죽는다면 하야토도 죽어버릴거야.”
누군가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리듯 스쳐갑니다.
처음 듣는 음성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쾌하기만 합니다.
……당신이 죽는다면 하야토도 죽는다니요?
11월 2일, 월요일은 이미 지나간, 기억에 없는 날인데 말입니다.
조작하였다 하기엔 명백한 탐사자, 당신의 필체입니다.
다음 문장을 읽어보자면,
[그가 보는 앞에서.]
……문득 어제 꾼 꿈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 꿈에서 당신은 뭘 하고 있었죠?
하야토가 당신을 그렇게 본 이유는, 당신이 잡고 있던 것은…
서랍의 권총으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이내 잡아봅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그 감각, 언젠가 마지막으로 느꼈을…
……아, 그랬던가요. 그 꿈은 역시…

…… 인기척에 돌아보자면 어느새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선 하야토가 당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손에 칼을 든 채로요.
7. 토요일, 23시
하야토의 옷에는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당신의 것이겠죠.
그저 죽일듯 바라보다가 당신의 손에 들린 종이, 그리고 권총을 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어이없다는듯, 아니, 어쩌면…














당신은 결심합니다. 그가 시간을 되돌린 이유, 최악의 마지막을 다시금 선사해 주기로 합니다.
그저 그가 쥔 칼을 바라봅니다. 그를 바라봅니다.
총구를 제 머리에 겨눕니다.
아. 낯선, 너무나도 익숙한 감촉입니다.
순간 하야토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평생 저한테 보이지 않던. 아니, 그 무의식에서 봤을 감정.
당황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된다는 무력감? 그게 아니라면… 당신도 나를 사랑했나?
그 표정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던가요?
그렇게 보지 마,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두 번이나 직접 본다는건 멋진 일이니까.
지금 당신, 어떤 표정인가요?
타앙.
귀를 찢는 듯한 총성음이 울리고는 어둠으로, 그 붉음으로 시야가 잠식됩니다.
하야토가 뭐라고 말했던가요? 이젠 의미없지만.
털썩,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제 앞의 하야토가 옷을 제 피로 물들이며 쓰러지는 모습입니다.
그래,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선사한 최고의 마지막입니다.
시계바늘이 어느덧 자정을 가리킵니다.
아, 시야가 완전히 붉게 암전됩니다.
친애하는, 증오해 마지못할, 날 그토록 증오해서 죽여버리고 싶었을 하야토.
만약 다음이라는게 있다면, 그때는 당신이 나를 좀 더 사랑해주길.
END 3_ Psycholes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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